벨기에 각지 농민들, EU지구 포위…EU 규제 완화, 농산물 수입중단 촉구
도심서 농기구 불태우고 분뇨 투척하며 격렬 시위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 트랙터 행렬 사이로 한 시민이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고 있다. 2024.2.1 shine@yna.co.kr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오전 벨기에 브뤼셀 시내로 트랙터 행렬이 밀고 들어왔다.
이들 트랙터엔 이날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(EU) 특별정상회의에 맞춰 상경한 벨기에 각지의 농민들이 타고 있었다. 경찰은 브뤼셀에 모인 트랙터가 약 1천대라고 추산했다.
트랙터를 움직인 동력은 '성난 농심'이었다.
"우크라이나를 돕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. 근데 남을 돕기 전에, 자기 가족부터 챙기는 게 먼저 아닌가요?"
벨기에 농민 피에르 레징스테르(28)씨는 이날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전날 저녁 트랙터를 끌고 상경했다고 했다.
브뤼셀에서 약 100㎞ 떨어진 동부 리에주 주에서 온 그는 "엄격한 EU 규제로 생산비가 원래 높은 편인데 연료와 비룟값까지 올랐다"며 "값싼 수입 농산물과 경쟁이 되겠느냐"고 반문했다.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 트랙터 행렬이 서 있는 모습. 2024.2.1 shine@yna.co.kr
이날 브뤼셀 도심은 전날 오후부터 속속 도착한 트랙터 행렬에 점령당하다시피 했다.
EU 각 기관이 모인 'EU 지구'로 연결되는 도로마다 트랙터 수백 대가 진을 치면서 차량이 아예 근처에 진입할 수 없는 상태였다.
대부분 벨기에 각지에서 왔지만 이탈리아, 스페인, 포르투갈 등 인접 국가에서도 다수 참여했다.
(브뤼셀=연합늉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 앞 도로가 트랙터로 차단된 모습. 2024.2.1 shine@yna.co.kr
시위 참가자들은 휴경 의무, 가축분뇨 감축 등을 강제하는 EU 환경·농업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.
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입이 급증한 값싼 수입산 농산물에 밀려 소득도 감소했다는 불만을 쏟아냈다.
아직 협상 중인 EU-남미공동시장(메르코수르) 자유무역협정(FTA)에 반대한다는 팻말을 든 참가자도 있었다. 이들은 저가의 남미 농산물이 FTA로 수입되면 더 사정이 나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.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이탈리아 최대 농협협동조합의 연합체인 '콜디레티' 회원 스포르치니(29·왼쪽)씨와 마르코 보시니(30)가 1일(현지시간)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서 열린 시위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. 2024.2.1 shine@yna.co.kr
현장에서 만난 시위 참가자들은 국적과 무관하게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. 이제 막 전업 농부의 길에 들어선 20∼30대의 젊은층도 쉽게 볼 수 있었다.
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 마르코 보시니(30) 씨는 "지금 이대로라면 수입산과 같은 값에 품질 좋은 상품 생산은 아예 불가능하다"며 "이탈리아는 물론이고 EU 정책입안자들이 우리 요구를 듣지 않으면 시위는 계속될 것"이라고 했다.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 앞에 시위대가 모여 있다.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여물, 농기구 등에 불을 붙이고 경찰을 향해 분뇨와 계란을 투척하기도 했다. 2024.2.1 shine@yna.co.kr
사람이 점점 더 모이고 분위기가 고조하면서 시위가 격화해 경찰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.
트랙터가 유럽의회 진입로를 완전히 막아서는가 하면 흥분한 일부 참가자가 의회 건물 앞에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려고 했다.
(브뤼셀 AP=연합뉴스) 1일(현지시간)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 앞에서 분뇨를 투척하고 불을 지른 농민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. 2024.2.1 photo@yna.co.kr
이 과정에서 이들이 미리 준비한 소똥과 계란을 투척하자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맞대응했다. 격앙된 농민들이 광장에서 농기구를 불태우는 장면도 연출됐다.
브뤼셀타임스는 도심 광장에 있던 150년 된 동상이 시위 과정에서 파손되기도 했다고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.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도심 광장에서 일부 시위 참가자가 농기구 등에 불을 붙인 모습. 2024.2.1 shine@yna.co.kr
트랙터 시위가 격화하자 정상회의장 경비도 한층 강화됐다.
경찰은 정상회의장인 EU 이사회 건물 앞 도로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한 것은 물론, EU 출입증이나 취재증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행인도 통제했다.
EU 측은 출입기자단에 "시위로 진입이 어려울 수 있으니 오전 8시 이전에 도착하는 것이 안전하다"고 안내하기도 했다.
회의 시작 3시간 전인 오전 7시께 회의장에 도착했지만, 취재진이 몰린 데다 보안 검색이 한층 강화되면서 8시를 넘겨서야 프레스룸에 안착할 수 있었다.
(브뤼셀=연합뉴스) 정빛나 특파원 = 1일(현지시간)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EU 이사회 건물(왼쪽) 주변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되고 있는 모습. 2024.2.1 shine@yna.co.kr
'EU 심장부' 브뤼셀 도심에서 열린 전례없는 시위에 자연스레 정상회의장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됐다.
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에게 농민들의 주장이 "부분적으로 정당하다"며 "그들은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새 (농업정책) 표준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"고 지지했다.
그러면서 "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될 필요가 있다"고 주장했다.
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과 더크로 총리,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가 끝난 뒤 EU내 농민단체 연합체인 '코파-코제카' 대표단과 면담했다고 벨기에 총리실이 전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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